우주가 왜 존재하는지 철학적 관점에서의 탐구를 위하여 오늘은 고대 철학의 시선 및 신의 개입과 그의 반론 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왜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있는가?" 이 질문은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을 사로잡아온 철학적 물음이다. 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별을 바라보며, 하늘 너머의 세계를 궁금해했고, 결국 그것이 ‘우주’라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단순히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가’에서 멈추지 않고, 그 존재 자체에 대해 물음을 던지기 시작한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철학자들이다.
우주의 크기나 모양, 구성에 대한 과학적 설명과 달리, 철학은 왜 우주가 존재하게 되었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따진다. 이 글에서는 철학의 눈으로 우주의 존재 이유를 탐구해보고자 한다.
존재를 묻는 첫걸음 – 고대 철학의 시선
우주의 존재를 설명하려는 철학적 시도는 고대 그리스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는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무(無)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세상은 항상 있어 왔고, 변하지 않으며,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반해, 또 다른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은 흐른다"고 말하며,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게 있어 세상은 불처럼 타오르며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철학자들은 우주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 변화의 유무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제시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있는 것’을 탐구하는 철학 분야를 ‘존재의 학문’이라고 불렀으며, 사물이나 세계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조건을 설명하였다. 그것은 재료, 형태, 작용하는 힘, 목적이다. 그는 이 네 가지가 하나로 조화를 이루었을 때, 어떤 것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또 ‘움직이지 않지만 모든 것을 움직이게 만드는 근원적인 원인’을 제시하며, 그것이 모든 존재의 시작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후에 많은 사상가들이 ‘신’에 가까운 개념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근대에 이르러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문장을 통해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었고, 우주 전체의 존재에 대한 설명과는 거리가 있었다.
여기서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왜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지금까지도 철학자들에게 가장 근본적인 물음으로 남아 있다.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인 것이다.
세상의 시작은 어디에서 왔는가 – 신의 개입과 그에 대한 반론
우주의 존재를 설명하는 방식 중 가장 오래된 생각은 ‘신’이라는 절대적인 존재가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종교적 세계관에서는 세상은 신의 뜻과 계획에 따라 창조되었으며, 그 목적이 있다는 주장이다.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전능하고 완전한 신이 가장 좋은 세계를 만들었을 것이라 보았고, 따라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철학자 흄은 "우주가 원인에 의해 생겨났다고 해도, 그 원인이 반드시 신일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원인과 결과’라는 개념이 인간의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개념을 우주 전체에 똑같이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또 다른 철학자 러셀은 "우주는 그냥 그렇게 존재한다. 그것뿐이다"라고 말하며, 우주의 존재에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때때로 우리가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 자체가 잘못된 방향일 수 있다고 보았다.
현대에 들어와 우주의 존재를 설명하는 자연 중심적인 시각도 등장하였다. 이는 초월적인 존재 없이도 우주가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세상은 아무 계획이나 목적 없이 그저 생겨난 것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우주의 존재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의심하는 것으로, 인간의 사고방식이 가진 한계를 드러내는 사례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없었을 수 있는가 – 무(無)의 철학적 의미
우주의 존재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질문은 "무가 존재할 수 있었는가?"라는 물음이다. ‘무’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다. 공간도, 시간도, 물질도 없는 상태, 오직 완전한 공허만이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철학자들은 바로 이 ‘무’라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지 의심하였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무’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 그것을 이해하거나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무’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무엇인가’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존재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며,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존재들이 실은 아주 특별하고 설명이 필요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존재에 대한 물음을 오랫동안 잊고 지내온 인류에게 다시금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현대 이론들 중에서는 이 세상이 유일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세계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생각도 있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선택된’ 하나일 뿐이며, 다른 가능성의 세상들도 있을 수 있다는 관점이다. 이 경우 ‘왜 이 세상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은 더욱 복잡해진다.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바로 이 세계가 나타난 이유를 다시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논의들은 단 하나의 해답을 향해 나아간다기보다는, 존재라는 사실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며, 우리가 어떤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보아야 할지를 되묻게 한다.
우주는 왜 존재할까? 이 질문에 대해 철학은 아직도 분명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해답을 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철학은 해답보다 ‘질문을 던지는 것’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가 이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단순히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의 본질을 탐구하는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존재에 대한 물음은 단순한 지식이나 호기심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깊은 지성의 표현이며, 우리 스스로의 위치를 자각하게 만드는 출발점이다. 우주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계속해서 이 물음을 붙잡고 살아가야 한다. 그 물음 속에서 인간은 철학하고, 성장하고, 더 깊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