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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일본 역사: 권력, 억압, 그리고 변화의 흐름

by kokokoca 2025. 5. 13.

여성과 일본 역사: 권력, 억압, 그리고 변화의 흐름
여성과 일본 역사: 권력, 억압, 그리고 변화의 흐름

 

일본의 역사는 종종 남성 중심적 서술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속에서도 여성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왔다. 고대의 여성 통치자에서부터 에도 시대의 억압된 여성상, 그리고 근현대의 여성 운동에 이르기까지, 일본 여성의 역사적 발자취를 살펴보면 일본 사회의 변화상도 함께 엿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 여성의 역사적 위치를 세 가지 시기로 나누어 살펴본다.

 

고대 일본과 여성 권력자의 시대

일본 역사 초기에 해당하는 야요이 시대(기원전 300년경~기원후 300년경)부터 고대 국가가 형성되기까지, 여성은 정치적, 종교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특히 일본서기와 고사기 등 고대 문헌에서는 여성 지도자의 존재가 자주 등장한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바로 히미코(卑弥呼)다. 그녀는 3세기경 야마타이국을 다스린 여성으로, 정치뿐만 아니라 무당과 같은 영적 역할도 맡아 나라를 안정시켰다고 전해진다. 히미코는 당시 중국의 위(魏)나라 사서 『위지』 동이전에 등장하는데, 이로 인해 실제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은 인물로 간주된다.

이후에도 일본에는 여덟 명의 여제(女帝)가 즉위했으며, 대표적으로 스이코 천황(推古天皇)은 일본 최초의 여성 천황으로, 쇼토쿠 태자와 함께 불교와 정치 제도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시기에는 여성이 정치 권력을 쥐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었고, 가문 중심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의 혈통이 중요한 정치 자산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나라 시대와 헤이안 시대에 들어서면서 여성의 정치적 위상은 점차 축소된다. 이 시기의 귀족 여성들은 문학과 예술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겐지모노가타리』의 저자 무라사키 시키부, 『마쿠라노소시(베갯속 이야기)』를 쓴 세이 쇼나곤 등은 문학사에서 여성의 창작 활동이 얼마나 활발했는지를 보여준다. 정치권에서는 물러났지만, 문화의 영역에서는 독창적인 감성과 지성을 드러냈다.

 

중세에서 근세로: 가부장제 강화와 여성 억압

가마쿠라 시대(1185~1333) 이후 무사 계급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여성의 지위는 더욱 제한되기 시작했다. 무사의 가문 내에서 여성은 정략결혼을 통해 가문 간의 동맹을 맺는 도구로 간주되었고, 무사 가정의 윤리인 '무가노오기(武家の掟)'에서도 여성의 순종과 정절이 강조되었다.

에도 시대(1603~1868)에 들어서면서 유교적 이념이 사회 윤리의 기반으로 자리 잡으며, 여성에 대한 통제는 더욱 강화되었다. 유교에서는 '삼종지도(三從之道)'—여성은 어릴 땐 아버지를, 결혼하면 남편을, 늙어서는 아들을 따라야 한다—라는 교리를 통해 여성을 철저히 가정과 남성에게 종속시켰다. 여성은 교육받을 기회도 제한되었고, 법적으로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간주되었다.

이 시기에도 여성이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주로 남성을 보조하거나 뒷바라지하는 역할에 국한되었다. 예를 들어, 상인 가문에서는 여성들이 재정 관리나 상점 운영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공식적인 사회 권한은 주어지지 않았다.

한편, 게이샤(芸者)나 유녀(遊女)와 같은 직업 여성의 존재도 이 시기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단순히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었을 뿐 아니라, 고도의 예술성과 교양을 요구받았으며 때로는 정치적 정보 교환의 중개자로 기능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기본적으로 철저한 남성 중심의 사회 구조에 의존하고 있었다.

 

근현대 여성운동과 새로운 지평

메이지 유신(1868)을 기점으로 일본은 서구식 근대화에 돌입하며 여성의 지위에도 점진적인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성 교육이 확대되었고, 일부 상류층 여성은 유학을 통해 서구의 자유주의와 페미니즘 사상을 접하기도 했다. 쓰다 우메코(津田梅子)는 미국 유학 후 귀국해 여성 교육 기관인 ‘쓰다주쿠 대학’을 설립하여 일본 여성 교육의 선구자가 되었다.

하지만 법적 권리는 여전히 제한적이었고, 여성의 정치 참여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20년대에는 여성 참정권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고, 히라쓰카 라이초(平塚らいてう)와 같은 여성 운동가들이 『여성의 벗』 등의 잡지를 통해 여성의 자아 찾기와 권리 신장을 주장했다.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은 미국의 점령하에서 신헌법을 제정했고, 이때 여성에게도 참정권이 주어졌다. 1946년 총선에서는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국회의원들이 대거 당선되었다. 이후 여성은 점차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로 진출하며 변화의 바람을 이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여전히 성별에 따른 불평등이 심각한 사회 중 하나로 지적된다. 여성의 고위직 진출 비율이 낮고, 육아·가사에 대한 여성의 부담이 커 경력 단절이 잦은 문제 등이 있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성평등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일고 있고, 여성 정치인과 기업 리더들이 등장하며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마무리: 역사를 통해 본 일본 여성의 자리

일본 역사 속 여성의 위치는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고대에는 권력의 중심에 있었고, 중세와 근세에는 가부장제에 눌려 있었으며, 근현대에 이르러 권리를 찾아 나서는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여성의 역사는 단순히 피해자의 역사만이 아니라, 저항과 자각, 그리고 자기 실현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일본 사회의 본질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고민해야 할 젠더 문제의 실마리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